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걸어 들어서며 이 말이 떠올랐다. 1969년 경복궁 소전시관에서 첫 발을 내딛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왔다.과천관, 덕수궁관, 서울관, 청주관. 네 개의 관을 거느린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산 증인이 되었다. 각 관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과천관은 1986년 문을 열었다. 서울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은 이유로 '미술관의 무덤'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미로 오히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숲속의 미술관"이라는 애칭은 이렇게 탄생했다.
2013년 문을 연 서울관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구 기무사 터에 들어선 이 미술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옛 건물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덕수궁관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998년 개관 이래 한국 근현대미술의 정수를 선보여왔다. 최근에는 이건희 컬렉션 일부가 이곳에 전시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2018년 문을 연 청주관은 미술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닌, 미술품 수장고와 보존과학 연구 시설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역사에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다. 1974년 백남준의 첫 한국 개인전은 그 시작이었다. 당시 생소했던 비디오 아트는 관람객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겼다. "텔레비전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의아해하던 관람객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2016년 서울관에서 열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전시는 또 다른 이정표가 되었다. 6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관람객과 눈을 맞추는 퍼포먼스는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홍성담의 작품 '세월오월' 전시 취소 사건은 예술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런 논란조차 미술관의 성장 과정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 겪으며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왔다.
오늘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우리 시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큐레이터가 들려준 말이다. 그렇다.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시대와 호흡하며, 우리의 질문에 예술로 답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질문을 들고 이 미술관을 찾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답을 만나게 될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당신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다.